짤막글 조각모음

1.

역할을 부여받는다는 것엔 삶에 의미를 부여받는다는 의미가 있잖아. 그래서 이게 사람의 생존에 직결되는 요소라는 이야기를, 어느 유튜버가 칠레 광부 33명의 생존 스토리를 인용하며 하더라고. 갇혀있는 동안 각자에게 역할을 부여했대. 너는 오락담당, 너는 간호담당, 이런식으로.

재관의 해체를 다른말로 하면 전통과 시스템의 해체일까. 근대화의 기저 이데올로기인 개인의 자유와 해방은 문명의 진일보라고 생각하지만, 개개인에게 당연하게 부여되어 있던 역할을 깨버리면서 불안을 가져온 건 빛과 함께 따라온 그림자였다. 이걸 어떻게 완화할건지가 시대과제라고 생각해.

자유와 불안은 원래 같이 다닌다. 신이 사라진 시대에 사람들은 신을 없애 놓고 결국 신을 대체할 것을 찾아다닌다. 그게 시스템이든 전통이든 뭐든. 불안이 해결이 안되는 구기득권층은 자유를 찾은 약자들에게 갑자기 너같은 게 튀어나와서 내가 이렇게 된거라고 화풀이를 한다.

결국은 관계 속에서 공동체를 찾아야 불안을 조금은 해결할 수 있을텐데… 이걸 전근대엔 개개인의 능력과는 무관하게 역할로서 배당해버렸다면, 이젠 공동체를 찾고 유지할 수 있는가가 개인의 관계 맺는 능력에 달렸다는 게 불안요소인거지. 안 만나준다고 여자를 죽이는 남자들이 이걸 잘 보여주고.


2.

사람이든 사회든 어떤 속성엔 양면이 다 있잖아. 일본사회의 높은 신뢰자본은 분명 편리하고 안심되는 면은 있거든. 사회에서 만난 잘 모르는 개인이라도 웬만하면 당연한걸 당연하게 할 거라는 믿음과 기대가 있으니까. 이 사회에서 뭐가 당연한건지 잘 이해만 하고 있으면 이만한 안심재료가 없는거지.

이게 반대급부로 나와서 나를 골치 아프게 하는 씬은 내 외국인이라는 속성이 나를 이 신뢰자본 향유에서 제외시켜버릴 때다. 외국인이니까 이 사회의 약속 상 뭐가 당연한 건지 몰라서 당연한 걸 당연하게 이행하지 않을거라는 낮은 기대치가 나를 더 빡세게 증명해야 하는 쪽으로 작용할 때.

그러다 이제 한국에 오면 거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에 놓이는거지. 아무도 서로를 안 믿고, 뒷통수 맞을까봐 걱정해야 하고, 남도 나를 디폴트로 의심하지만 나도 남을 디폴트로 의심해야 하는 자연상태. 믿을건 돈이고 법이고 거기에 따라오는 인맥과 뒷줄인 사회. 속은 사람이 등신이라는 사회.

세상엔 일본 같은 사회가 더 드물지 뭐. 변동성이 작은 상태로 오랜시간 성장하고 정체된 사회가 갖는 이점 같은 거잖아. 한국처럼 변동성 큰 사회에 살면 개인의 약속 능력도 떨어지는 거지. 약속능력의 사회적 조건은 신뢰자본이 충분히 성숙될 만큼 좋게말해 안정되고 나쁘게 말해 정체된 사회다.

일본사회 컬쳐코드 제1조 안젠안신. 사는 동안 신나게 놀렸지만 나가면 조금 그리워질 것도 같음. 물론 시간 지나 이 게임에 익숙해져서고 시간의 축적이 내게 외국인이라는 속성 외에도 나를 쉽게 증명할 수 있는 요소와 커뮤니티를 가져다줬기 때문이지만 나 이제 룰도 잘 모르는 곳에서 새로 쌓아야 한다.


3.

직장내 파워하라 고발했을 때, 사내에서 얘기 많이 들어주고 도와주신 어른이 있거든. 별의별 모함을 받고 예민해져 있을 때, 내가 늘 그랬듯 습관적으로 누구의 어떤 말과 행동을 과잉해석하고 불안해했나 그랬다. 그때 그 분이 나한테 ‘잠깐 잠깐. 증거있어?’ 라고 날 진정시켜 주신 게 지금도 가끔 생각나.

다른 이야기인데, 이런저런 이유로 타이밍이 안 좋게 엮인 인연이 있다. 서로 타이밍이 안 맞아서 그쪽은 그쪽대로 나는 나대로 어떻게 할 수 없었을 뿐인데, 그 사람이 날 갖고 노는 것 같은 기분에 제풀에 지쳐 거리두기 했다. 얼마전 몇달만에 저쪽에서 먼저 침묵을 깨고 언제 가느냐 묻더라.

거리두기 하는 동안 열심히 내 삶 살고 나 이제 괜찮은 것 같았는데, 침묵이 깨지자마자 또 시작인거지. 얘 또 무슨 생각인거지.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는거지. 오만가지 경우의 수가 챗지피티보다 빠르게 떠올라서 스스로 고통받다가 옛 상사를 마음속으로 소환했다. 증거있어? 그걸 니가 어떻게 알아.

그리고 워워, 무슨 생각이긴 무슨 생각이겠어. 나는 말을 좀 액면가 그대로도 받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 말에 따르면 하나만 확실한거지. 가기 전에 보고싶다고. 딱 거기까지만 받아들이면 된다. 나는 아무 언질도 없이 갑자기 끊어버렸는데 먼저 말 건네주는 마음은 고마운 것이다.

사건은 있는데 범인은 없는 상황이 이런 상황일 것이다. 해석을 덧붙여서 사건을 창조한 건 차라리 나지 뭐… 각자의 삶이 있는 두 개인이 각자 자기 세계를 지키면서도 자꾸 시선이 머물러 쳐다만 봤다. 거기엔 호의만 있었다.

나는 내 세계를 깰 생각이 없으면서 남인 그가 그의 세계를 깨고 나오지 않는다고 악마인 건 아니다. 각자 손이 묶여있는 채로 최선의 호의를 다 했고 그건 뒷맛이 깔끔한 종류의 해피엔딩 같은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비극도 아니다. 삶은 길고 꼭 서로 만나지 않아도 관계는 계속되고 변한다. 그건 비극도 아니고 희극도 아니고 그냥 삶이다.


4.

Midnight Rain에, ‘I guess sometimes we all get just what we wanted’이라는 가사 있거든. 난 이거 요즘 엄청 실감나. 성격이 운명이라는 말도 이해가 되고. 상처였던 관계들 있잖아, 근데 그게 또 나도 내가 하고싶은 대로 한 결과이기도 했다.

상처를 받고 싶었다는 게 아니라, 상처를 받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해야만 했어서 그런건데, 다른말로 하면 나는 나로 존재하는 법 외에는 다른 방법을 몰라서 그런거고, 상처가 따라오든 뭐가 따라오든 나는 나다운 선택을 하고, 거기 따라오는 댓가를 그대로 치뤘을 뿐이었던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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